정약용의 춘분에 생각나는 매조도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매조도(梅鳥圖)"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789년 관직을 시작하여 정조의 절대적인 총애를 받으며 실학사상으로 개혁을 하였으나 노론들의 이른바 서학을 빌미로 심한 견제를 받다가 정조가 1800년 서거하면서 1801년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즉 신유박해(辛酉迫害)이다. 이 사건으로 천주교 신도인 남인이 여러 명 처형을 당하였고 다산 정약용도 귀양을 갔으며 전남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무려 18년이나 하였다.
유배지에서 다산은 경세유표(經世遺表)와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와 같은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였다. 경세유표는 조선의 개혁 방향을, 목민심서는 수령이 갖춰야 할 덕목을 제시하고, 흠흠신서는 법률을 연구한 책이다.
다산의 조강지처 홍혜완에게는 두 아들 학연 학유와 딸 홍연이 있었는데, 두 아들은 가끔 당진 유배지를 찾아 아버지를 보고갔지만 홍혜완은 천리 밖 유배지에 가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산이 첩실을 두고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남편의 그 나뉜 사랑의 존재에 깊이 고뇌한 홍혜완은 시집올 때 입고 왔던 낡은 노을빛 치마를 다산에게 보낸다. 이른바 노을 하(霞) 치마 피(帔), 하피(霞帔), 빛바랜 다홍치마를 내려보내 남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함께 조강지처의 건재를 각인시키려는 것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산은 마음과 몸이 어려운 가운데 가족을 이끈 아내. 그녀에게 고마움과 미안함과 애틋함을 깊이 새기며 그 노을빛 비단치마의 일부로 하피첩(霞帔帖)을 만들어 두 아들인 학연, 학유에게는 폐족(廢族)의 자식으로 살아가야 할 지혜와 교훈을 담은 서첩을 만들어 보내고, 나머지 치마를 잘라 두 딸(첩실 딸 홍임 포함)에게는 매화에 채색 깃 새가 앉아 있는 매조도(梅鳥圖)에 애틋한 아버지의 정을 시에 담아 보낸다.
자신의 제자와 혼인을 앞두고 있는 큰딸 홍연에게는 두 마리의 채색 깃 새가 다정히 앉아있는 그림에 행복한 혼인생활을 기원하는 시를 담아 보내고, 본처의 거둠을 거부당한 홍임(紅任)에게는 한 마리의 채색 깃 새만 앉아있는 그림에 유배생활이 끝나면 홀로 남을 딸에 대한 애처러움이 절절히 넘치는 시를 담은 매조도를 남긴다.
사실 첩실을 두게된 사연은, 유배지 근처 주막에서 일을 하던 표서방이라는 사람이 유배지에서 점점 쇠약해지는 다산을 보고 스물 두 살의 청상과부로서 15세 때 가난하고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갔다가 자식도 낳지 못한 채 남편이 돌림병으로 죽자 친정에 돌아와 있던 딸이 있었는데, 워낙 가난하니까 고을 부자 양반댁의 찬모로 들어가 전라도 음식을 하나하나 여러가지 익혔던 딸 표씨 여인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게하였다. 그러다가 다산의 잔심부름까지 하게 되면서 표씨 여인은 다산의 첩실이 되었고 다산과 그녀 사이에 딸이 하나 생겼는데 그 이름이 홍임(紅任)인 것이다.
매화쌍조도 내용
翩翩飛鳥(편편비조) 펄펄 나는 저 새가
息我庭梅(식아정매) 내 뜰 매화에 쉬네
有烈其芳(유열기방) 꽃다운 향기 강렬해
惠然其來(혜연기래) 기꺼이 찾아왔지
爰止爰棲(원지원서) 머물러 지내면서
樂爾家室(락이가실) 집안을 즐겁게 하네
華之旣榮(화지기영) 꽃이 활짝 피었으니
有賁其實(유분기실) 열매도 많겠구나
嘉慶 十八年 癸酉 七月十四日 洌水翁書于茶山東菴
余謫居康津之越數年 洪夫人寄敞裙六幅 歲久
紅渝 剪之爲四帖 以遺二子 用其餘 爲小障 以遺女兒
가경(嘉慶) 18년 계유년(1813) 7월 14일에 열수옹(洌水翁)이 다산(茶山)이 동암(東菴)에서 썼다.
내가 강진(康津)에서 귀양살이 한지 여러 해가 지났을 때, 부인 홍씨(洪氏)가 헌 치마 여섯 폭을 보내왔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붉은 빛이 바랬다. 잘라서 첩(帖) 네 권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고, 그 나머지로 족자를 만들어 딸에게 남긴다.
매화독조도 내용
古枝衰朽欲成搓(고지쇠후욕성차)
묵은 가지 다 썩어서 그루터기 되려더니
擢出靑梢也放花(탁출청초야방화)
푸른 가지 뻗어 나와 꽃을 다 피웠구려.
何處飛來彩翎雀(하처비래채령작) 어데선가 날아온 채색 깃의 작은 새는
應留一隻落天涯(응유일척낙천애)
한 마리만 응당 남아 하늘가를 떠도네.
의증종혜포옹매조도(擬贈種蕙圃翁梅鳥圖) 라는 방제(旁題)와 함께 '가경 계유년 8월 19일, 혜초(蕙草) 밭에 씨뿌리는 늙은이에게 짐짓 주려고 자하산방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