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114

조선의 건국

태조 이성계 8월5일 조선 건국. 1392년 8월5일은 고려 말 신진 사대부의 지지를 등에 업고 무관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옥새를 받으며 조선왕조의 막을 연 날이다. 이성계는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군사정변을 일으켜 실질적인 권력을 잡았다. 그후 이성계는 창왕 · 공양왕을 왕위에 올렸다가 신돈의 사생아라고 사건을 조작하여 폐위하는 등 정권 · 군권 · 경제권을 행사하였고, 전제 개혁을 단행했다. 그후 1392년 음력 7월 17일(양력 8월 5일)에는 공양왕이 왕대비에게 준 옥새를 회수, 이성계에게 주면서 주변 측근들의 추대로 왕위에 오르면서 조선왕조가 막을 올렸다. 1393년 음력 2월 15일에는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고, 1394년에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겼다. - 건국 초기 개요 고려 말기에는 ..

역사이야기 2021.08.05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 1일부터 1970년 7월 7일까지 2년 5개월만에 완공되었다. 429억원이 투입되었으며 연인원 892만 8천명과 165만대의 장비가 투입된 대형 사업이었다. 77명이 건설과정에서 사망하였으며 16개의 업체와 3개 건설공병단이 참여하여 건설하였다. 1970년 당시 서울 - 부산간 고속버스 요금은 성인 1명 기준 1,600원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할 당시의 기점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이고 종점은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이었으나, 2002년 5월 1일에 변경된 노선체계에 따라 기점은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구서 인터체인지)이고 종점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으로 변경되었다. 사업은 1968년 2월 1일 서울과 오산을 잇는 제1공구를 시작으로 4월 3..

역사이야기 2021.07.07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한국 지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7월2일(현지시간)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UNCTAD가 1964년 설립된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UNCTAD는 이날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제68차 무역개발이사회 마지막 날 회의에서 컨센서스(의견 일치)로 이 같은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태호 주제네바 한국 대표부 대사는 "UNCTAD에 대한 한국의 참여에 있어 역사적인 이정표"라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그는 무역의 역할을 언급하지 않고는 오늘날 한국의 발전을 설명할 수 없다면서 이번 지위 변경이 "'무역은 경제 발전을 위한 중요한 도구'라는 UNCTAD의 격언을 진정으로 증명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 많은 국가들이 무역..

역사이야기 2021.07.03

제2연평해전 일어난 날

오늘은 제1연평해전으로부터 3년 후인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이 일어난 날이다. 이날은 2002 FIFA 한일공동월드컵 한국의 3/4위전날로 대한민국 대 터키와의 3위 결정전이 있었던 날이었다. 이날 연평도 근해 2척의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정과 등산곶(육도) 388호정이 NLL을 1.1km 침범하였고 이에 해군 고속정 4척이 교전수칙대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참수리 편대는 각 편대별로 경비정 1척씩을 맡아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는데, 이 중 684를 맡은 232편대에서는 편대장 김찬 소령이 좌승했던 기함인 358호정이 선두를 맡고 357정은 300야드 정도 뒤에서 북한 경비정 쪽으로 접근하였다. 이윽고 참수리들이 차단 기동을 실시하기 위해 684의 전진방향의 횡으로 가로지르기 시작했고, ..

역사이야기 2021.06.29

백범 김구 암살당한 날.

김구(金九, 1876년 8월 29일 ~ 1949년 6월 26일)는 대한제국의 승려, 교사,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치인, 남북통일 활동가였다. 항일비밀결사인 한인애국단을 이끌었고 한국 광복군을 조직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을 역임하였다. 1949.6.26 안두희(安斗熙) (암살범)에게 살해 당했다. 김구의 암살 배후는 미궁이다. 안두희가 6.25 전쟁 이후 사면을 받고 군납업체를 운영했기 때문에 권력층의 보호를 받았을 것이라고 추정만 될 뿐, 그 배후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국회 백범김구선생 시해진상규명위원회가 작성한 "백범김구선생 암살진상국회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신성모 국방장관, 채병덕 육군총참모장, 장은산 포병사령관, 김창룡 소령, 김병삼 대위, 김태선 서울시..

역사이야기 2021.06.25

워터게이트 사건이 드러나는 발단이 된 날(1972.6.17)

워터게이트 사건 (Watergate scandal)은 1972년부터 1974년까지 2년 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각종 일련의 사건들을 지칭하는데, 미국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전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민주당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 침입과 도청 사건, 이를 부정하고 은폐하려는 미국 행정부의 조직적 움직임 등 권력 남용으로 말미암은 정치 스캔들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 불법 침입과 도청이 문제인 듯이 보였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부정하고 은폐하려 했던 닉슨 행정부의 거짓된 움직임이었다. 결국, 이 같은 문제로 닉슨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임기 중 사퇴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사건의 발단이 된 1972년 6월 17일,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다용도 건물..

역사이야기 2021.06.16

제1연평해전(6.15)

제1연평해전 1999년 6월 15일 오전 9시경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 해군의 도발로 벌어진 남북 함정간의 해전으로 당시 한국 해군은 7명이 부상, 고속정이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반면 북한 해군은 어뢰정 1척과 경비정 1척이 침몰하고 다른 경비정 3척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퇴각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1999년 6월 7일 북한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 서북쪽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 3척이 꽃게잡이 어선 보호를 이유로 경비정 1척의 북방한계선(NLL) 침범을 자행하였다. 이후 8일, 9일 계속되었다. 6월 15일 오전 8시 45분,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 서북쪽 10㎞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 4척이 다시 NLL을 침범하여 우리 고속정에 충돌을 시도하였고 오전 9시 4분에는 어뢰정 3척을 ..

역사이야기 2021.06.14

전 세계 핵탄두수는 1만3천80개, 북한 40~50개 보유추정

스웨덴 싱크탱크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6월14일(현지시간) 발표한 연례 보고서에서 북한을 포함해 미국, 러시아, 여국,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9개국을 핵보유국으로 분류하고 북한이 올해 1월 기준 40~50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보다 전체적으로 10개 가량 증가한 수치다. SIPRI는 다만 북한이 핵탄두 보유와 관련해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있고, 핵분열 물질 배출량에 근거해 추정한 불확실한 자료라는 점을 들어 추정치라는 단서를 달았다. SIPRI는 "북한이 국가안보 전략의 핵심 요소로서 핵무기 프로그램을 계속 증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2020년의 경우 핵탄두 폭발 실험이나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은 하지 않..

역사이야기 2021.06.14

6월 민주항쟁(民主抗爭)

6월 민주항쟁(民主抗爭)이 시작된 날. 박정희 이후, 전두환 군사 쿠테타 정부의 강압적인 통치에 맞서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정부 시위이다. 4·13 호헌 조치와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 그리고 연대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등이 도화선이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였다. 이에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의 대통령 직선제로의 6·29 수습 선언 이후 국민투표를 거쳐 1987년 10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져 1987년 12월 16일 새 헌법에 따른 대통령 선거가 대한민국에서 실로 16년 만에 직접선거로 치러졌다. 이때 저도 시청과 을지로 입구에서 넥타이부대 일원으로 최류탄에 맞서던 ..

역사이야기 2021.06.10

6.10만세운동

1926년의 6.10 만세운동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926년 순종황제의 인산일(장례일)에 일어났던 6.10 만세운동은 1919년 3.1운동과 1929년 11.3 광주학생운동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는 운동이기도 하다. 당시 6.10 만세운동으로 일제에 붙잡힌 학생은 서울에서만 210여 명이었고 전국적으로는 1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그 규모가 상당했다. 학생 주도로 일어난 6·10만세운동은 전국 각지로 번져 전국 55개교 동맹휴학으로 이어져 일제에 항거하는 뜻을 보였다. 6·10만세운동은 신간회 설립의 배경이 되었고, 학생 독서회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어 학생들의 의식이 향상되면서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때 사상과 이념으로 독립운동계가 혼선을 빚..

역사이야기 2021.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