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의 뿌리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맥이 닿아 있다. 냉전시대 소련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미국은 ‘오랑캐는 오랑캐로 다스려야 한다’는 중국식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폈다. 1960년대 공산주의 진영의 분열은 미국이 노린 승부수였다. 중국을 소련으로부터 떼어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미국은 소련과의 패권경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소련이라는 경쟁자를 꺾는 데는 성공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은 ‘하룻강아지’에서 ‘호랑이’가 됐다. 2010년 중국은 GDP(국내총생산) 기준 일본을 누르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에 올라선 것도 모자라 패권국의 위상을 넘보고 있다. 2011년 오바마 정부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아시아로 미 외교정책의 중심을 옮기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런 의도가 깔려 있다.
미국이 판단하기에 중국의 패권국 도전은 노골적이다. 미국 주도의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 맞서기 위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세운 것이나, 과거 미국의 대(對)유럽 원조 정책을 본떠 만든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은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또 서방선진 7개국 모임(G7)과 유사한 형태의 신흥경제성장국 모임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를 만든 것도 미국이 보기에 같은 이유로 해석된다. 급기야 중국의 야심은 ‘중국몽(中國夢)’이라는 노골적이면서 선동적인 언어로 포장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몽은 ‘중국의,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패권’이다.
1. 미국, 중국산 제품에 高관세 부과 1라운드
무역전쟁은 패권 경쟁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1라운드다. 선공은 미국이 날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월22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중국산 수입품에 25%, 총 500억 달러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대미 투자도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이날 서명식에서 트럼프는 천문학적인 관세 부과 조치를 통해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총 10억 달러에 달하는 120개 미국산 품목에 15%의 관세를 부과하고, 총 20억 달러에 이르는 8개 품목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보복관세 조치를 발표했다.
그러자 7월6일 미국은 당초 방침이 정해진 500억 달러 중 340억 달러 규모의 818개 품목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는 등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했다. 중국이 곧바로 똑같은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자동차·수산물 등에 보복관세를 발동하자 미국은 나흘 뒤인 7월10일 2000억 달러 상당 수입품에도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의 강공 드라이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8월23일부터 16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고율관세를 부과하겠다고 8월7일(현지 시각) 공식 발표했다. 6일 조치에 이은 2단계다.
미국 정부의 무역전쟁 목표는 명확하다. 이참에 중국의 싹을 잘라내겠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가 유럽연합(EU)에 제시한 ‘관세면제 선결조건’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미국은 관세 카드를 활용해 EU와 중국 사이를 벌리고, 대(對)중국 공격에 있어 EU가 공동보조를 맞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지적재산권과 첨단기술이전 문제를 선결조건으로 내걸었다.
당초 판세는 미국이 중국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을 거란 전망이 우세했다. 할리데이비슨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무역전쟁의 결과로 미국 산업이 적잖게 타격을 입은 사례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되레 미국의 잇단 강공에 중국은 당황해하는 모습이다. 8월4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가 이기고 있다. 중국이 처음으로 미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올렸다. 그는 “중국 증시는 4개월간 27% 떨어졌지만 미국 증시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며 “미국 철강공장 근로자들이 다시 일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실제로 8월2일 중국 증시의 시가 총액은 일본 도쿄 증시에 역전당하며 4년여 만에 세계 2위 자리를 넘겨줬다.
중국 경제의 불안감을 반영하듯 위안화도 급락세를 보였다. 최근 두 달 동안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위안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7% 수준의 하락세를 보였다. 중국 인민은행은 8월3일 위안화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 선물 거래에 20%의 증거금을 부과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위안화의 추가적인 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선물환 수요를 강력하게 억제하겠다는 조치였다.
2. 환율 통화정책
중국 통화정책을 이끄는 두 사람,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당서기 궈수칭(郭樹淸)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은보감위) 주석과 이강(易綱) 인민은행장의 애를 태우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풀어야 할 숙제는 복잡하다. 미국과의 무역 분쟁이 심화하며 경기 위축에 대한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기업과 지방정부의 빚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중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환율도 심상치 않다. 위안화 가치가 미국 달러당 7위안보다 낮아지는 ‘포치(破七)’를 막기 위해 전방위로 나서고 있지만 위안화 가치는 연일 약세다. 여기에 세계금융시장을 뒤흔든 터키발 충격까지 13일 상륙했다. 이날 중국인민은행은 위안화 가치를 달러당 6.8629위안으로 고시했다. 지난해 5월31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시험대에 선 궈수칭-이강 라인이 두려워하는 저승사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다. ‘통화정책 정상화’ 모드로 전환한 Fed의 통화정책이 중국의 목을 서서히 죄어 오고 있어서다.
세계금융위기로 좌초한 경제를 건져내기 위해 Fed는 전례 없는 양적완화(QE) 정책을 펼쳤다. 유동성 잔치가 벌어졌다. 값싼 돈이 신흥국으로 몰려들었고 이들 정부와 기업은 유동성에 취해 흥청댔다.
중국 기업은 그동안 설비투자와 금융자산 매입 등을 위해 부채를 늘려왔다. 국내에서 자금조달이 어려웠던 기업은 초저금리 기조 속에 달러 빚까지 냈다. 부채는 급증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2008년 171%에서 올 1분기 299%로 급증했다. 따라서 이제 잔치는 끝났다. 돌아오는 것은 빚의 반격이다.
금융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부터 향후 3년간 신흥국 정부와 기업이 발행해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은 3조2297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 기업과 정부가 갚아야 하는 돈은 이 중 54%에 해당하는 1조7531억 달러다.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부채의 파괴력은 더욱 커질 기세다. 긴축으로 돌아선 Fed 때문이다.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며 채권 시장에서 큰 손을 자처했던 Fed가 발을 빼면서 채권 가격은 하락세다. 금리가 오른다는 의미다.
최근 터키발 금융위기 가능성이 고조되며 안전자산 수요가 미 국채로 몰리는 탓에 금리가 일시적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재정적자를 통한 경기부양에 나서는 미국 정부가 국채 발행을 늘리며 채권값은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만 미 재무부는 1조 달러의 국채를 발행할 것으로 시장은 추산하고 있다. 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게다가 Fed는 올해 3월과 6월 정책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추가 2회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은 해외로 빠져나갔던 자금을 불러들이며 달러 강세를 유도하는 요인이다. 중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위안화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는 곧 돈을 빌린 중국 기업과 지방 정부의 부담이 커진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를 알고 있는 중국 당국은 커지는 부채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올 초 금융건전화정책을 펼치며 대출의 고삐를 죘다.
중국빚 때문에 시중의 유동성이 증발하며 당장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업의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이어졌다. 닛케이에 따르면 최근 석유 및 가스공급기업인 CERC와 부동산개발회사인 신창그룹은 달러화 표시 회사채를 갚지 못했다.
기업이 무너지고 미국과 무역 분쟁 심화에 따른 경기 위축 조짐이 가시화하자 중국 당국은 경기 부양으로 급격히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은보감위는 지난 8월11일 경기 부양을 위해 은행과 보험사에 대출 확대를 요청했다. 인민은행도 지난 10일 발표한 ‘2분기 통화정책보고서’에서 “경기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신중한 통화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위안화 약세도 중국의 약한 고리다. 위안화 가치는 지난 6월 이후 달러화대비 6% 가량 하락했다. 관세 부과의 충격을 상쇄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위안화 약세를 용인한다는 시각도 있었지만 인민은행은 “위안화 환율을 통상 전쟁의 무기로 쓰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위안화 약세에 따른 자본 유출의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2015~2016년 위안화 급락 당시 상당한 자금이 중국을 빠져나가며 금융 시장은 홍역을 치렀던 트라우마가 있다. 10월 미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발표도 중국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
에릭 피터스 원리버자산운용의 최고운용자(CIO)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이 양적완화를 통해 중국의 금융위기 가능성을 높인 것은 가장 효과적인 외교정책이었다”며 “중국의 무릎을 꿇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긴축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순항 중인 미국의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파월 의장이 긴축을 향한 속도를 늦출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파월이 긴축을 향한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으면 중국에 다가오는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미 중 무서운 무역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