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全琫準):1855년(철종 6) ~ 1895년(고종 32).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명좌(明佐). 초명은 전철로(全鐵爐). 별명은 전영준(全永準). 호는 해몽(海夢)이다. 몸이 왜소하였기 때문에 흔히 녹두(綠豆)라 불렸고, 뒷날 녹두장군이란 별명이 생겼다. 출생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고창군 죽림리 당촌이 유력하다. 아버지는 고부군 향교의 장의(掌議)를 지낸 전창혁(全彰爀)이며 어머니는 광산김씨이다.
123년 전인 1895년 일본군에 붙잡혀 순국한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전봉준 장군 동상이 2018년 4월24일 서울 종로1가 영풍문고 앞에 들어섰다. 동학은 구한말 탐관오리들의 적폐를 뒤엎고 백성이 사람대접 받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일어난 사회변혁 운동이다. 그 최고 지도자가 ‘녹두장군’ 전봉준이었다. 그는 1894년 3월 농민들을 이끌고 봉기한 뒤 전국 곳곳에 농민 자치기구인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해 개혁 운동을 폈다. 이후 일본의 침략에 맞서 그해 9월 2차 봉기에 나섰다가 전북 순창에서 관군과 연합한 일본군에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었고 전옥서(典獄署)에 수감된 뒤 처형당했다. 이번에 동상이 세워진 자리가 바로 전옥서 터다. 지난 40여 년 동안 ‘동학과 전봉준’을 연구해온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이이화 이사장(81)의 노력으로 동상이 세워졌다.
당시 동학농민군의 간절한 소망이었던 서울 진입은 관군과 일본군이 지킨 공주 우금치 전선에 막혀 끝내 무산됐다. 순창 피노리에서 체포된 후 혁명군 지도자가 아닌 죄인 신분으로 서울 땅을 밟게 된 전봉준 장군의 심정인들 오죽했으랴 싶다. 전봉준 장군이 사형 전 “나를 죽일진대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내 피를 뿌려주는 것이 옳거늘 어찌 남몰래 죽이느냐”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봉준 장군 동상의 화룡점정은 ‘눈빛’이다. 누군가는 동상의 눈빛을 형형하다고 했다. 전봉준 장군의 사진을 보면 흑백사진임에도 매서운 ‘레이저 눈빛’을 볼 수 있다. 안도현 시인은 ‘서울로 가는 전봉준’시에서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 오늘 나는 알겠네”라고 전봉준 장군의 눈빛에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