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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생부인 김노경이 1830년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다가 순조의 배려로 풀려났으나 헌종이 즉위 초, 반대 세력인 안동 김문의 모함으로 55세 때 억울하게 김정희 자신도 윤상도의 옥사 연루혐의를 받고 1840년(헌종 6)에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극도의 외로움과 어려움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고 있을때 예전 중국에 사절로 함께 갔던 역관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이 사제 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두 번이나 제주도로 건너가 1843년 특사단 수행길에 청나라에서 구한 '만학집(晩學集)' 8권과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 6권을 건내주었고 이듬해에는 중국을 다녀와 하장령(賀長齡)의 '황청경세문편(皇淸經世文編)' 120권을 보내주었다. 당시 책값이나 희귀성을 보면 대단한 것이다.
이상적의 우정은 추사에게 엄청난 위로와 감동을 주었다. 이에 1844년 추사는 둘 사이의 아름답고 절절한 우정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 이상적에게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너무도 유명한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180호)이다. 세한도라는 이름은 논어 자한편에서 따왔으며 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를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하여 극도의 절제와 간략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위에는 세한도라는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 완당(藕船是賞 阮堂)' 이라고 써서 자신이 이상적을 위해 그렸음을 밝히고 이 아래에 ‘정희’라고 찍힌 인장이 있다. 특이한 것은 그림 오른쪽 아래에 ‘장무상망(長毋相忘)’ 이라는 인장이 찍혀있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의미이다. ‘장무상망’ 인장은 중국 한나라 기와나 거울에 새겨진 문구를 모방한 것으로 청나라 사람들이 사용했다. 김정희는 젊었을 때 동그란 ‘장무상망’ 인장을 사용했는데 세한도에는 네모난 ‘장무상망’이 찍혀 있어 의문이며 이 인장이 누구 소유였는지 누가 찍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그림 좌측에는 종이를 이어 네모 칸을 치고, 강하고 굳센 필치로 그림을 왜 그리게 되었는지를 상세히 적었다. 거칠고 메마른 붓질을 통하여 한 채의 집과 고목이 풍기는 스산한 분위기가 추운 겨울의 분위기를 맑고 청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고 했네. 그대(이상적)가 나를 대함이 귀양 오기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으니 그대는 공자의 칭찬을 받을 만하지 않은가' 추사는 ‘세한도’에 함축된 이런 유래를 바탕으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는데 18행의 발문중에 추사의 감정과 自存이 가장 잘 드러나는 문구가 있다. 즉,
歲寒然後知 松栢之後凋(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 잣나무(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비로소 알 수 있다.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은 기뻐하며 청나라에 가져가 장악진(章岳鎭), 조진조(趙振祚)를 비롯한 청나라 문인 16명에게 제찬을 받아 조선으로 가지고 돌아온 후 문인 3명에게 또 제찬을 받았는데, 이것이 오늘날 세한도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었다. 한편, 이상적은 임금의 총애를 받아 영구히 '지중추부사'직을 받았으며, 12번이나 중국을 내왕하면서 당대의 저명한 중국 문인들과 교류를 맺어 중국에서 시문집<車中記夢>을 발간까지 하였던 인물이다.
발문의 먼저 화자는 1~2행에서 ‘소한’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설정함으로써 유배지에서 ‘세한도’를 그리던 추사 김정희와 자신의 처지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한다. 3~16행에서는 추운 겨울을 힘들게 보내고 있는 작고 여린 생명들에 관심을 표현하면서 ‘겨울’이 무엇보다 ‘생명’에게 혹독한 시기임을 환기한다. 다음으로 17~21행에서는 ‘겨울’을 시대적 상징으로 사용하여 진보적인 세력에게 몰아닥친 시련과 겨울을 동일한 의미망으로 연결하고, 나아가 그 겨울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22~26행에서는 비록 지금은 벽에 걸어둘 수 없는 것이지만, 훗날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면, 유배가 끝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오면 자신의 손으로 떼어낸 것들을 다시 걸겠다고 다짐한다. 끝으로 27~30행에서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숲길에서 낮은 목소리로 ‘그대’의 이름을 부르겠다고 다짐한다.
[세한도 원문 해설]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 此皆非世之上有 購之千萬里之遠 積有年而得之 非一時之事也(거년이만학대운이서기래 금년우이우경문편기래 차개비세지상유 구지천만리지원 적유년이득지 비일시지사야)
지난해에 만학(晩學) 대운(大雲) 두 글을 부쳐오고 금년에는 또 우경문편(藕耕文編)이라는 글을 부쳐오니, 이는 모두 세상에 있음이 아니요 천만리의 먼 곳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구입한 것으로 한때의 일이 아니다.
且世之滔滔 惟權利之是趨爲之 費心費力如此 而不以歸之權利 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 如世之趨權利者(차세지도도 유권리지시추위지 비심비력여차 이부이귀지권리 내귀지해외초췌고고지인 여세지추권리자)
또한 세상은 온통 오직 권세와 이익(權利)을 쫒는 것을 일삼는데, 마음을 쓰고 힘을 씀이 이 같아서 권리로 돌아가지 않고, 마침내 바다 밖의 한 초췌히 메마른 사람에게 돌아옴이 마치 세상의 권리를 쫒는 자와 같구나.
太史公云 以權利合者 權利盡以交疎 君亦世之滔滔中一人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 不以權利視我耶 太史公之言非耶(태사공운 이권리합자 권리진이교소 군역세지도도중일인 기유초연자발어도도권리지외 부이권리시아야 태사공지언비야)
태사공이 이르기를, “권리(權利)에 영합한 자는 권리가 다하면 사귐이 성글어진다”고 하였다. 그대 또한 세상의 도도한 흐름 속에 있는 한사람으로서, 초연히 스스로 권리 밖으로 나와서, 권리로 나를 보지 않으니 태사공의 말이 틀린 것인가?
孔子曰 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 歲寒以前一松栢也 歲寒以後一松栢也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今君之於我 由前而無加焉 由後而無損焉(공자왈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송백시관사시이불조자 세한이전일송백야 세한이후일송백야 성인특칭지어세한지후 금군지어아 유전이무가언 유후이무손언)
공자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진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松柏)가 나중에 시듬을 안다”고 하였다. 송백(松柏)은 사계절을 통하여 시들지 않는 것이니, 세한(歲寒) 이전에도 한결같이 송백이요 세한 이후에도 한결같이 송백(松柏)이다. 성인은 특별히 세한(歲寒) 이후를 강조하고 있네. 지금 그대가 나에게 대하는 것이 귀양살이 이전에도 더한 것이 없고 이후로도 덜한 것이 없구려.
然由前之君無可稱 由後之君亦可見稱於聖人也耶 聖人之特稱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연유전지군무가칭 유후지군역가견칭어성인야야 성인지특칭 비도위후조지정조경절이이 역유소감발어세한지시자야)
그러니 이전의 그대는 말할 것도 없고, 이후의 그대도 성인(聖人)이 말씀하신대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성인(聖人)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단지 나중에 시드는 정조(貞操)와 굳센 절개만 아니라 또한 세한(歲寒)의 때에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네.
烏乎 西京淳厚之世 以汲鄭之賢 賓客與之盛衰 如下邳榜門 迫切之極矣 悲夫阮堂老人書(오호 서경순후지세 이급정지현 빈객여지성쇠 여하비방문 박절지극의 비부 완당노인서)
오호라, 서한의 순박하고 풍요한 시대에는 급암이나 정당시의 어짊으로도 빈객(賓客)이 더불어 성쇠(盛衰)하였고, 하비(下邳)나 방문(榜門)같이 박절(迫切)한 것의 극에 달했구나. 슬픈 완당노인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