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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汝矣島, Yeouido)의 역사

nyd만물유심조 2023. 12. 4. 20:49

여의도의 아침

여의도의 밤

여의도(汝矣島, Yeouido)는 서울특별시 소재 한강에 위치한 섬으로 공식 넓이는 약 87만 평, 290ha이다.

1421년 (세종 3년)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수연(水碾)과 잉화도(仍火島)에서 양, 돼지, 닭, 오리, 기러기 등을 나누어 길렀다. 1556년 (명종 11년)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잉화도에는 전생서와 사축서의 관노비들이 거주하면서 이들이 근친 간 통혼을 일삼고 물을 건널 때에도 함부로 옷을 벗으며 남녀 간에 손을 잡고 다니는 바 습속이 음란하므로, 섬의 인가를 모두 철거하여 서울의 본청으로 옮기도록 하고, 가축 기르는 일은 일체 남자만 하도록 하는 장면이 나온다.

1751년 (영조 27년) '도성3군문분계총록'에서는 한성부 서부 연희방 내에 여의도계(契)라는 구역이름이 최초로 등장한다. 고종 대에 편찬된 '동국여지비고'에서 "나의주(여의도)는 예전에 목장이 있어서 사축서와 전성서의 관원을 보냈으나 이를 폐지하였다. 지금(고종 시절)은 사축서의 양 50마리, 염소 60마리 만을 놓아기른다"고 기술되어 있다.

1916년 일제가 간이 비행장을 건설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20년 이탈리아의 공군중위 페라린과 마지에로가 조종하는 공군기가 처음으로 여의도에 착륙하여 서울 시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1922년 안창남의 고향 방문 비행으로 인하여 여의도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한다. 1929년 4월에는 여의도 비행장이 본격으로 정식비행장이 되고 중국(만주 일대), 한국, 일본을 잇는 항공수송의 요지가 되어 비행장이 여의도 전체를 거의 다 뒤덮는 형태가 되었다.

하지만 장마철마다 침수되는 문제로 인해 일제 당시인 1936년부터 이미 김포비행장(현 김포국제공항)과 투 트랙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갓 창설된 대한민국 공군은 장마철마다 짐을 싸서 옮겼다가 들어오고를 반복했다. 이윽고 1958년 김포국제공항으로 여객 업무가 이관되고 공군기지는 1971년까지 남아 있다가 경기도 광주군으로 이전하면서 완전히 폐쇄되었다.

개발의 시작은 김현옥 시장당시 1970년 2월 10일 밤섬 폭파로부터 불과 110일만에 여의도 윤중제가 준공되었다. 이후 양택식 시장이 여의도를 평면계획으로 변경하여 일반인에게 분양하면서 5.16광장이 여의도 한가운데를 가르고 들어왔다. 1971년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첫 입주하였고 1975년 8월 15일, 1968년에 첫 삽을 뜬 국회의사당이 준공되었으며 1976년 KBS 신사옥이 준공되었다. 1979년엔 명동에 있던 한국증권거래소가 이전하였다.

1980년 삼성그룹의 TBC(동양방송) 여의도 신사옥이 준공되었으나 "동양 최대 스튜디오"를 표방한 이 건물은 준공되자마자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으로 KBS가 접수해 현재 KBS 별관으로 쓰이고 있다. 1982년 MBC(문화방송) 여의도 사옥, 1990년 SBS 여의도 사옥이 각각 입주해 2000년대 초까지 '여의도 방송가'를 형성했다. 1983년에는 63빌딩이 완공되고 2년 뒤인 1985년에 개장하였으며 1999년 5.16 광장은 여의도 공원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