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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체 끝부분에 달린 텔로미어(파란색 부분)는 세포분열 때마다 조금씩 길이가 짧아진다. 더 이상 줄어들 수 없을 만큼 짧아지면 세포분열은 정지하고 세포는 사멸한다. photo genengnews.com)
늙음, 즉 노화란 무엇일까. 국제학술지 '셀(Cell)'은 지난 2013년 그 당시까지의 노화 연구를 모두 모으고 분석해 9가지 특징으로 노화를 정리해 발표한 바 있다. 이후 2023년 10년간의 연구를 종합해 3가지 특징을 더한 확장판 논문을 최근 소개했다. 세계 과학계가 밝혀낸 노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 1유전체 불안정성
우리 몸속에서 유전정보는 DNA의 형태로 보관된다. 이 DNA가 모여 염색체를 이룬다. 보통 정상 세포에서는 정교한 손상 복구 시스템으로 DNA가 온전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때때로 많은 유전적 요소, 방사선·화학물질 등의 환경적 요인에 의해 DNA의 절단과 변이, 염색체의 숫자와 구조 변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이상 현상을 '유전체(게놈) 불안정성'이라고 한다.
유전체 불안정성은 DNA 손상 복구와 관련이 밀접하다. 예를 들어 더운 여름날 세포가 직사광선을 직접 쬐었다면 DNA에 손상을 줄 수 있는데, 이때 일상 수준의 DNA 손상이라면 복구가 이뤄져 변형을 바로잡기 때문에 유전체의 불안정성은 없어진다. 하지만 복구 단백질에 이상이 생기면 변형 DNA는 복구되지 않아 세포의 변형을 일으키는 노화의 근본적 원인이 된다.
- 2텔로미어 길이 단축
인간은 주기적으로 세포분열을 통해 생명을 유지한다. 세포들이 분열될 때는 DNA를 복제한다. 하지만 염색체 끝부분에 달린 텔로미어(Telomere)는 복제되지 않고 세포분열 때마다 조금씩 길이가 짧아진다. 그리고 더 이상 줄어들 수 없을 만큼 짧아지면 세포분열은 정지하고 세포는 사멸한다. 이것이 노화와 직결된다. 근육세포에서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지면 힘이 약해지고, 피부세포에서 짧아지면 탄력이 감소한다.
- 3후성 유전적 조절 변화
'후성 유전학'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DNA 서열은 변하지 않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이나 운동, 바이러스 같은 외부 요인에 따라 유전자 발현 패턴이나 활성이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DNA에 달라붙는 생화학물질 '메틸기'의 패턴에 의해 유전형과는 다른 표현형의 변이가 나타나고 그것이 대물림된다. 예를 들어 일란성 쌍둥이는 같은 유전자를 가졌는데도 자라면서 주변 환경과 생활습관이 다르면 노화가 다르게 일어난다. 한 명은 건강하지만, 한 명은 엉뚱한 장소에서 엉뚱한 유전자가 켜진다. 그 결과 세포가 정체성을 읽고 기능 이상에 빠진다. 후성 유전학 변화가 세포에 영향을 미쳐 생기는 정보의 상실이 노화인 셈이다.
- 4단백질 항상성 상실
단백질은 사람 몸에서 물 다음으로 많은 질량을 차지하는 분자다. 뼈대를 세포 수준에서 구축하고 여러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효소 역할을 하는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 역할을 담당한다. 10만종이 넘는 인체의 수많은 단백질들은 유전적 결함이나 환경적 요인에 따라 달라진 단백질 상태를 원래대로 복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합성되고 분해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단백질 항상성'이라고 하는데, 평균적으로 2~3%가 매일 교체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단백질 항상성이 떨어진다. 몸이 노화될수록 상처가 빨리 아물지 않는 이유다. 단백질 항상성이 붕괴돼 손상된 단백질이 축적되면 결국 각종 암이나 신경질환, 자가면역질환 등의 원인으로 이어진다. 단백질 항상성이 손상된 단백질의 처리에 달린 셈이다.
- 5거대 자가포식 장애
단백질 응집체는 보통 두 가지 방식으로 제거된다. 수명을 다한 세포에만 붙는 '유비퀴틴 단백질'을 활용하는 '프로테아좀 시스템'과 세포 내부의 오래된 단백질이나 손상된 소기관을 세포가 스스로 먹어치우는 '자가포식'의 방법이다. 리소좀이라는 소기관을 통해 분해·청소해 세포의 활성을 높이거나 새로운 영양소로 재활용하는 자가포식은 세포의 생존과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 현상이다.
이 같은 자가포식에 장애가 발생하면 노화와 관련된 질병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은 자가포식 기능을 퇴행성 뇌질환 등의 치료에 적용할 방법을 찾고 있다.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이 현상을 최초로 발견한 도쿄공업대 오스미 요시노리 명예교수가 수상했다.
- 6영양소 감지능력 감소
우리 몸에는 외부에서 흡수된 영양소의 질을 인지하는 감지능력이 있다. 정상 범위의 농도를 인지하고 반응한다. 노화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이 반응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때 세포의 노화가 빨라지면서 흡수된 영양소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정상 세포에서는 인슐린을 감지할 경우 포도당을 내부로 받아들여 혈당을 떨어뜨리는 '인슐린 저항성'이 작동하는데, 이 반응 센서가 둔해지면 그러한 조절이 힘들어진다.
- 7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장애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에너지 공장이다. 자동차 엔진이 휘발유로 동력을 만들어내듯, 미토콘드리아는 우리가 섭취한 음식 영양소를 산소를 이용해 탄수화물 형태의 에너지(ATP)로 만들어 세포에 공급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부산물로 유독물질인 활성산소가 배출된다. 활성산소는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할 때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매연과 같다.
활성산소는 반응성이 높아서 DNA, 단백질에 손상을 줄 수 있다. 적정량의 활성산소는 백혈구가 세균을 죽일 때 도움을 주지만 과도하게 발생하면 다른 세포들을 공격해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산 감소는 결국 노화로 이어진다.
- 8세포의 노화
우리의 몸은 약 30조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다. 이들 세포는 분열·성장·죽음 단계를 거치면서 체내에 일정한 세포 수를 유지한다. 오래된 세포가 죽고 새로운 세포가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이다. 그런데 분열횟수가 많아져 염색체 끝 손상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증식 속도가 떨어져 세포는 일단 분열을 멈추고 노화 세포 상태로 들어간다.
다시 말해 세포 노화는 산발적으로 발생되는 세포 손상이 조직의 손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불가역적인 세포 주기 정지 메커니즘인 셈이다. 이 같은 노화 세포가 점점 누적되면 대부분 염색체 이상이나 형태적 변화를 일으켜 다양한 만성 질병에 관여한다.
- 9줄기세포의 고갈
세포 노화는 줄기세포와 전구세포 같은 순환 세포들을 고갈시키는 역할도 한다. '줄기세포(stem cell)'는 스스로 계속 분열하면서 몸을 구성하는 여러 기관이나 조직으로 분화하는 능력을 갖춘 미분화 세포를 말한다. 제 기능을 못하는 세포나 장기를 대체할 수 있어 난치병에 줄기세포를 이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줄기세포는 재생이 계속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고갈된다. 그 결과 조직의 항상성과 재생이 저해되어 노화 역전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
- 10세포 간 소통 변화
한 사회나 조직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중요하듯, 세포가 사는 세상 역시 서로 신호를 보내 소통한다. 세포와 세포 사이에 설치된 첨단 신호 전달 시스템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생명 유지를 위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외부 침입에 대처한다. 걸어갈 때 뇌가 방향을 파악하고 속도를 조절해 다리를 움직이는 작업 역시 소통의 산물이다.
이런 세포 간 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조직 기능이 무너져 노화가 진행된다. 각 조직과 기관의 노화한 세포가 이웃한 세포에 활성산소를 전달하며 일종의 전염성 노화를 발현시킨다. 이 때문에 멀리 떨어진 조직에서도 세포가 변형돼 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에 오류가 생기면서 염증반응이 증가하고, 병원균이나 악성 세포에 대한 방어 능력도 줄어든다.
- 11만성 염증
염증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체내에 들어왔을 때나 생체 조직이 손상을 입었을 때 체내에서 일어나는 방어적 생체 반응이다. 급성 염증과 만성 염증으로 나뉜다. 급성 염증은 손상된 세포와 조직을 치유하는 정상적인 회복 과정이다. 감염, 외상, 독소 등으로 인해 발생하며 대부분 며칠 내로 증상이 완화되거나 사라진다.
반면 만성 염증은 사라지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계속 일어나는 염증 반응이다. 약물 부작용, 환경적 요인, 면역계의 약화가 원인이 될 수 있다. 만성 염증은 조직 손상과 회복 과정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올바른 조직 복구가 일어나지 않아 문제가 된다. 염증이 혈관을 따라 곳곳을 다니며 신체를 천천히 손상시키는데, 세포의 노화와 변형은 물론 면역계를 교란시킨다. 이로 인해 관절염을 비롯해 뇌졸중, 염증성 장질환 등 각종 질병 위험을 높인다.
- 12장내 미생물 불균형
장내 미생물은 인체를 구성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다. 우리 몸에는 100조개에 이르는 미생물이 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 대장 등 소화기관에 서식하는 장내 미생물로 나쁜 세균(유해균)과 좋은 세균(유익균)이 균형을 맞추면서 공존한다. 장내 미생물의 대사산물은 면역세포와 내분비세포는 물론 신경세포에까지 작용해 생체 기능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장내 미생물 균형이 이상적일 때는 면역력이 최상의 상태가 된다.
장내 미생물은 구강과 대장에 80% 존재한다. 위와 소장에는 별로 없다. 이 분포가 깨지면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이 생긴다. 생활습관, 식습관, 환경 조건으로 소장에서 정착해야 할 세균이 다른 집인 위에서 버티며 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착한 세균보다 나쁜 세균이 더 존재해도 문제다. 장내 미생물 균형이 무너지면 신체 노화가 가속되면서 만성장증후군, 역류성 식도염 등 건강에 치명적 악영향을 미친다. 장내 미생물과 노화의 연관성이 밝혀진 건 최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