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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고든 무어, 로버트 노이스, 앤디 그로브. 무어와 노이스는 1968년 인텔을 공동 창업했다. 그로브는 인텔의 세번째 직원으로 합류했고 이후 인텔 CEO를 맡으며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다. 인텔 제공)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개척하고 반도체 업계에서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고든 무어(Gorden Moore) 인텔 공동창업자가 3월24일 별세(향년 94세)했다고 발표했다.
인텔과 고든·베티 무어 재단은 무어가 하와이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무어의 유족으로는 부인 베티와 아들 케네스와 스티븐, 그리고 네 명의 손자가 있다.
고든베티 재단은 무어는 특유의 겸손함과 절제된 언어로 "기업가로서의 나의 경력은 우연히 생겨났다"라고 쓴 적이 있다며 "뛰어난 과학자이자 사업가, 자선가인 고든은 페이차일드와 인텔이라는 선구적인 기술기업을 창업했으며 아내 베티와 함께 고든·베티무어재단을 설립했다"고 추모했다.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인텔 본사를 설립하면서 실리콘밸리를 개척했다. 인텔은 세계 개인용 컴퓨터의 약 80%에 가장 중요한 부분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공급하고 있다.
무어는 '무어의 법칙'을 창안했다. 무어의 법칙이란 반도체 집적 회로의 트랜지스터 수가 2년마다 약 두 배씩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을 말한다. 이는 컴퓨터 성능이 거의 5년마다 10배, 10년마다 100배씩 개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PC 혁명 20년 전이자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기 40여년 전 "집적 회로는 가정용 컴퓨터에 연결된 단말기와 자동차용 자동 제어 장치, 개인 휴대용 통신 장비와 같은 경이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무어의 이론이 발표된 이후 반도체는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효율적이고 저렴해져 반세기 동안 전 세계 기술 발전의 대부분을 주도했다. 개인용 컴퓨터 기업뿐 아니라 애플과 페이스북, 구글 같은 실리콘밸리의 거대 기업이 등장하는데 기여했다.
무어 재단은 "고든이 인터넷에서 '머피의 법칙'보다 '무어의 법칙'이 더 많이 언급되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워하고 기뻐했다"고 회고했다.
최근 몇 년간 엔비디아 등 인텔의 경쟁 업체들은 반도체의 집적도 향상 속도가 느려지면서 무어의 법칙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인텔은 최근 제조상의 어려움으로 시장 점유율을 어느 정도 잃어버렸지만, 인텔의 현 최고경영자(CEO)인 팻 겔싱어는 무어의 법칙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무어는 1929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산호세주립대(San Jose State University), UC버클리(the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를 거쳐 '칼텍(Caltech)'으로 국내에 널리 알려진 캘리포니아공과대(the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1954년 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메릴랜드의 '존스 홉킨스 응용 물리학 연구소'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1956년 쇼클리반도체에 합류하며 캘리포니아로 돌아왔다. 이듬해 무어는 로버트 노이스 등 쇼클리반도체 동료 6명과 '페어차일드반도체'를 공동 설립했다. 11년 뒤인 1968년 7월 무어는 노이스와 함께 실리콘밸리에 인텔을 세웠다.
그는 인텔에서 승승장구했다. 1975년 사장이 됐고 1979년 CEO 겸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1987년까지 CEO를 맡으며 인텔을 세계 반도체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반도체 제국'으로 키웠다. 1997년 무어는 명예 회장이 되었고 2006년에 사임했다.
올해 포브스는 무어의 순자산을 72억달러(약 9조3600억원)로 추산했다.
무어는 은퇴 후 2000년 아내 베티 무어 여사와 함께 환경 문제에 초첨을 맞춘 복지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무어가 약 50억달러 규모의 인텔 주식을 기부한 금액으로 꾸려져 아마존 강 유역 등의 하천 보호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무어는 지난 2002년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민간인의 최대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