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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을 앞두고 2월20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철통 같은 보안 속에서 극비리에 진행됐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미군이나 동맹국 군대가 상황을 통제하지 않는 '전쟁지역(War Zone)'을 방문하는 이례적인 상황을 고려해 출국부터 도착 후 일정 진행까지 거의 24시간 이상 보안이 유지됐다.
앞서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재임 때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을 극비 방문했으나 해당 지역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게 미국 언론의 설명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미국 대사관 경비 업무를 담당하는 소수의 해병대 외에는 미군 병력이 없다. 이런 이유로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폴란드 방문 발표에 따라 인접국인 우크라이나 방문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날 가능성에 대해서도 끝까지 부인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조정관은 지난 2월17일 진행한 브리핑에서 "현재로서는(right now) 방문지는 바르샤바에 한정된다"고 말했다가 다시 "내가 '현재로서는'이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 변경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처럼 들리게 하고 싶지 않다"는 설명을 붙이면서 방문 계획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은 여러 개월 동안 논의·준비돼 출국 이틀을 앞둔 지난 2월17일 최종 결정됐다고 백악관은 전했다. 백악관, 국방부, 정보기관 등에서 극소수의 인사들만 참여한 가운데 방문 시 발생할 수 있는 안전 문제 등을 검토한 것이다.
존 파이너 국가안보부보좌관은 이날 화상 브리핑에서 "각 기관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사람들만 안전 작전을 위한 계획에 개입됐다"면서 "대통령은 단계별 계획과 비상상황 발생 가능성 등에 대해 충분히 보고를 받은 뒤에 갈지 말지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이 이후에도 바이든 대통령의 공개 일정에서 이런 내용을 빼는 등 방문을 자체를 함구했다. 실제 백악관은 2월19일 오후 7시에 보낸 일정 참고자료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2월20일 오후 7시에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폴란드로 출국한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2월19일 오전 3시 30분쯤 백악관에서 나와 우크라이나 극비 방문을 위한 일정에 들어갔다. 바이든 대통령을 태운 비행기는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오전 4시 15분에 이륙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에는 이른바 보잉 747을 개조한 에어포스원 대신 보잉 757기를 개조한 공군 C-32기를 사용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에어포스원보다 작은 공군 C-32기는 미국 내 여행 시에 사용하는 기종이다.
미 공군은 항공기의 콜사인도 '에어포스원' 대신 'SAM060'을 사용했다. SAM은 '스페셜 에어 미션'(Special Air Mission)의 줄임 말로 미국 정부 고위 인사를 태울 때 사용한다.
전용기 탑승 인원도 대폭 줄이면서 보안유지에 공을 들였다. 백악관에서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파이너 국가안보부보좌관, 케이트 베딩필드 백악관 공보국장 등이 탑승했다.
백악관 풀기자단도 통상 13명보다 적은 2명만 대통령과 동행했다. 이들 기자들은 출발 전에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를 백악관에 넘겼으며 비밀 유지도 서약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태운 전용기는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에서 급유를 위해 경유한 뒤 폴란드로 들어갔다. 폴란드 남서부 제슈프까지 이동하는 1시간 정도의 비행 동안 미 공군기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무선 응답기(트랜스폰더)도 껐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기에서 키이우까지 기차로 이동했으며 대략 10시간 정도 소요됐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다만 바이든의 비밀 방문은 출발 몇 시간 전에 러시아 측에 통보됐다. 설리번 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에 대해 출발 몇 시간 전 충돌을 피하기 위해 사전 공지했다"며 "소통의 민감성을 감안해 러시아의 반응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군은 바이든 대통령이 키이우를 방문하는 동안 E-3 센트리 조기경보기와 RC-135W 리벳조인트 정찰기를 폴란드 영공에 띄워 주변 상공을 감시하는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파란색 정장에 우크라이나 국기색인 노란색과 파란색 줄무늬 넥타이를 맨 바이든 대통령은 현지 시간 이날 오전 8시에 도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정상회담 등의 일정을 진행한 뒤 정오쯤 미국대사관을 방문했다.
이 일정을 수행한 백악관 풀기자단은 바이든 대통령이 오후 2시에 키이우를 떠났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노출을 피하기 위해 현지에서 이동할 때도 대통령 리무진 대신 검정색 SUV를 사용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찾은 것은 취임 후 이번이 처음이며 전쟁지역 방문도 처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 때 2017년까지 모두 6차례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미국 내외적으로 여러 목적하에 이뤄졌다고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
우선 전쟁이 1년이 다가오면서 장기전 양상으로 피로도가 높아진 가운데 서방의 리더로서 러시아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유럽 각국에 보였다는 해석이다. 서방 나라들에 이른바 '단일대오'를 주문했다는 것이다.
또 춘계 대공세 준비설이 나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다.
지난 1년간 우크라이나에 몰두해온 미국의 정책이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압박을 배가한 것이다.
또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이란이나 또 이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중국에 대한 강한 경고의 의미도 담겼다는 해석이다.
앞서 미국은 중국이 대러 군사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는 정보를 공개하면서 실제로 이뤄질 경우 '레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 국내적으로는 미국 유권자들과 하원을 장악한 보수 공화당에 강한 결의를 보여준 것으로도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