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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떡국의 유래와 지방마다 다른 떡국

nyd만물유심조 2023. 1. 19. 20:08


설날에 떡국을 먹기 시작한 것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 이전 시대에는 주식으로 떡을 먹었다고 하며 그대로 두면 굳으므로 부드럽게 먹기 위해 국물을 넣어 먹던 습관에서 비롯, 오늘날 떡국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설날은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명절로 요즘은 음력 1월 1일만 설이라 하지만 원래는 섣달그믐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를 설이라 했다고 한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우리 민족이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상고시대 이래 신년 제사 때 먹던 '飮福 음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했다.
조선 헌종 15년(1849년) 홍석모가 쓴 東國歲時記에는 떡국을 ‘백탕(白湯)’ 혹은 ‘병탕(餠湯)’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즉, 떡의 모양이 희다고 하여 ‘백탕’,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 하여 ‘병탕’(떡 병(餠))이라 했다.

설날엔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된다는 의미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자 맑은 물에 흰 떡을 넣어 끓인 떡국을 먹었다고 하며 떡국에 사용하는 긴 가래떡처럼 오래오래 살라는 의미도 있고, 가래떡의 길이는 집안에 재물이 죽죽 늘어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가래떡을 잘게 자르면 당시 화폐였던 엽전 모양과 비슷해서 물질적인 풍요의 의미도 담겨 있다고 되어 있다.
즉, 가래떡은 긴 생명과 건강, 엽전처럼 썬 떡국떡은 재물 운, 조롱이떡은 액막이, 오색 고명은 한국 고유의 전통 색을 상징한다.

요즘에는 떡국의 고명을 소고기로 하지만 예전에는 꿩고기를 넣었으며 당시 꿩고기는 귀한 음식으로 설날이 아니면 먹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꿩고기를 구하지 못하면 설날 떡국에 닭고기를 대신 넣었는데, 여기서 적당한 것이 없을 때 그와 비슷한 것으로 대신하는 상황을 일컫는 속담인 ‘꿩 대신 닭’이 나오게 된 것이다.

-지방마다 다른 떡국
지방마다 다양한 떡국이 있는데 개성 지방에선 조랭이떡국을, 강원도 지역은 진한 사골육수에 만두와 떡을 함께 넣은 떡국을 먹었다. 떡국에 만두를 넣는 지역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더 많다고 한다. 충청북도 지방에선 미역과 들기름, 들깨를 넣어 진하게 끓인 국물에 생떡을 넣었고, 충남 지역은 지역 특산물인 구기자를 이용해 구기자떡을 만들고 그 떡으로 떡국을 끓였다. 전라북도는 닭으로 육수를 내고 두부를 납작하게 썰어 넣어 만든 두부떡국을, 전라남도는 닭장떡국으로 진한 닭 육수에 간장에 졸인 닭고기가 고명으로 올라갔다. 경상북도는 태양떡국으로 떡의 모양이 타원형이 아니라 태양 같은 동그란 모양이고, 경상남도 지역을 비롯해 바다와 가까운 지역에서는 멸치떡국을 끓여 먹었다.

- 떡국에 관한 전설
조선시대에 지어진 야사집인 청성잡기에 따르면 조선 후기인 18세기 무렵에 한 세도가가 사치스러운 떡국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떡국에 들어가는 떡은 얼굴이며 팔다리까지 정교하게 빚은 어린아이의 형상으로, 눈으로 보기에 사랑스럽고 소리가 먹음직스러우며 냄새가 향기롭고 떡이 부드럽게 씹히며 맛이 좋아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보통 사치스러운 음식이 아니었던지 그 가문은 오래 못 가고 망해 버렸다고 한다. 이는 영조 때의 권력자 구선복과 관련된 일화이다. 그와 내외종간인 이주국이 구선복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가 떡으로 만든 아이 인형을 먹으며 거드름을 피우는 것을 보고 의절하며, 임금에게 이 행태에 대해 고하면서 구선복이 나중에 죄를 짓더라도 연좌하지 말아 달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구선복은 사도세자가 죽을 때 뒤주를 지키며 내관들이 가져온 미음과 물까지 내치는 바람에 정조의 원한을 샀고, 결국 정조 즉위 이후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그러나 이주국은 의절해서 무사했지만, 친척으로서 도리를 다해야 한다며 구선복이 죽었을 때 장례를 잘 치러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