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인간의 삶을 낙타와 같은 삶, 사자와 같은 삶,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은 삶이 있다고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낙타와 같은 삶이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행동하는 삶이며, 사자와 같은 삶이란 경쟁하고 투쟁하며 갈등하며 사는 삶이며, 어린아이의 삶이란 삶의 본질을 즐기며 순수하게 사는 삶이란 의미이다.
요즘은 니체에 빗대 학창시절인 20대까지의 삶을 인생1막, 직장생활을 하며 끊임없이 뭔가를 얻으려 경쟁하는 50대까지를 인생2막, 그리고 은퇴 후 삶의 본질을 음미하며 행복한 삶을 즐겨야 할 시간을 인생3막이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인생이라는 연극무대의 각 막은 어떠한 모습이고 인생3막은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할까? 자, 인생이란 연극의 막을 펼쳐보자.
인생 제1막: 낙타와 같은 삶
태어났다는 말은 아마도 태아에서 나왔다는 말을 줄인 말일 게다. 인간은 애당초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태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삶을 살아갈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부모나 이웃, 사회로부터의 양육과 훈육이라는 방법을 통해 삶을 살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타자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니 발걸음을 떼어놓는 순간부터 “이렇게 해”, “그거 하면 안 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의 연속이다. 이때가 바로 학창시절이라고 통칭하는 인생의 제1막이다.
자기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기 전까지의 단계이니 도움을 받는 막이다. 소위 삶에서는 조연 단계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어쩌면 다른, 시키면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하는 낙타와 같은 삶이 이어진다. 그런데 장성하면서부터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게 되며 경쟁하고 갈등하는 인생2막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생 제2막: 사자와 같은 삶
이제는 나름의 연기방법도 알았고, 삶의 주연이 되고 싶어진다. 그런데 삶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 부양해야 할 가족도 생겼고, 씀씀이가 커지니 더 벌어야 하는데 만만치 않은 세상이다. 그러니 더 전투적으로 벌어야 하고 남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 적자생존의 시절이다. 머리가 깨지고 피가 튀는 현실이다. 이때는 삶의 본질이니, 행복한 삶이니 하는 것은 유보된 가치고 배부른 세레나데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는 다른 세상의 삶이다. 오로지 먹고살아야 하고, 경쟁하고 투쟁해서 승리해야만 제대로 살 수 있는 삶이 이어진다. 니체가 얘기한 사자와 같은 삶이다. 어느 정도의 부와 명예라는 트로피를 거머쥐었지만 새로운 도전자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오랜 싸움에서 지쳐 체력은 저하되고 경쟁의 뒤안길로 밀리게 된다. 새로운 경쟁을 하기엔 역부족이니 스스로 내려앉든지, 죽음을 무릅쓰고 다툴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인생3막이 기다리고 있다.
인생 제3막: 어린아이와 같은 삶
그런데 연극에서는 막간 휴식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는 데, 왜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는 곧바로 또 투쟁적인 삶을 연기하라고 할까? 퇴직 후 대다수의 사람들은 또다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낙타와 같은 삶, 끊임없이 갈등하고 투쟁해야 하는 사자와 같은 삶을 바로 이어가려고 한다. 왜일까? 이제 인생은 80을 넘어 100세까지의 삶이 가능한 시대가 왔고 그 얘기는 무려 40여년 이상을 무언가는 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삶을 음미하며 참 행복이 무엇인가를 즐기는 무대여야 함에도. 재취업, 재테크 등 온통 또 다른 인생2막의 모습이 펼쳐진다. 그런데 육체적 정신적 능력은 점점 쇠락해 간다. 경제력, 지위, 명예를 유지하기가 예전 수준 같지 않다. 그러니 어쩌랴? 해답은 기대와 현실 수준이 점점 격차를 보이는 인생3막에서는 욕심을 줄이고, 가진 것을 내려놓고, 설령 얻는 것이 적어지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함께 하는 사회에 동참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능한 일을 제3의 업으로 삼는 일이다.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사자와 같은 자세를 버리면 된다.
-인생은 3막이 고약하게 쓰여진 조금 괜찮은 연극이다. (Life is a moderately good play with a badly written third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