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의 2대 교파. 이슬람교에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수니파(순니파로도불림. 90%)와 시아파(8~9%)라는 2대 교파가 있다. ‘수니’는 아랍어 ‘순나’(sunnah)에서 파생한 말인데, ‘순나’의 원래 어의는 ‘교훈, 행위’ 등이었으나, 이것이 이슬람교에 전의(轉意)되어서는 ‘(이슬람교)교법, 교의, 성훈(聖訓, 하디스, 무함마드의 언행)’이란 뜻을 가지게 되었으며, 파벌로 표현될 때 ‘수니파’는 ‘정통파’로 해석된다. 이에 비해 ‘시아’(shī’a)의 원래 어의는 ‘분파, 종파’이나 전의되어서는 ‘수니파’(정통파)에 반하는 교파, 즉 ‘시아파’로 표현된다.
따라서 이 두 교파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방법은 두 파의 출현과 주장 등을 비교 분석하는 것이다. 두 파의 분립은 다른 보편 종교들의 교파 분립과는 달리 근본 교리나 교법이 서로 달라서가 아니라, 교권이 ‘누구에 의해 이어져야 하는가’라는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두 파의 차이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수니파는 칼리파 제도(계승제)를, 시아파는 이맘 제도를 고수하는 것이다. 수니파는 무함마드를 계승한 4대 정통 칼리파(계위자)들의 관행을 충실히 따르고, 그들을 이은 우마이야조나 압바스조를 거쳐 오스만 투르크가 폐기할 때(1924)까지 계승된 킬라파 제도를 정통으로 삼고, 이슬람세계의 현실적 역사발전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시아파는 4대 칼리파는 잘못된 계승으로서 응당 무함마드에서 그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에게로 직접 계승되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후계자는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것이 아니며, 알리가 이미 유일신 알라로부터 선택된 ‘신성한 빛’을 받은 후계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아파는 선출이나 세습에 의한 계승을 부인하면서 알리의 후손들로 이어지는 이맘제를 창안하였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칼리파는 잘못이 있을 경우 폐위까지 가능하지만 이맘(아랍어로 ‘인도자’란 뜻)은 무오류의 초인간적 존재로서 현세적 문제나 샤리아(al-Sharī’a, 이슬람교법) 상의 문제에서 절대적 해석권과 판결권을 갖는다. 시아파는 알리의 후손들 중 누구를 이맘으로 추대하는가에 따라 여러 분파로 갈라졌다. 그 가운데서 가장 큰 분파는 현재 이란에 정착된 ‘12 이맘파’다. 이들은 어느 날 홀연히 ‘은폐’된, 알리의 직계인 제12대 이맘 마흐디(al-Mahdī, ‘기다리는’ ‘은폐된’이라는 뜻)가 앞으로 어느날 재림한다고 믿고 그것을 신조로 삼고 있다.
이슬람 세계에선 수니가 다수파다. 세계 무슬림 열 명 중 여덟아홉은 수니파다. 메카·메디나 성지를 둔 사우디아라비아가 종주국이다. 시아는 소수파다. 이란이 종주국이고 이웃 이라크에도 시아파가 7대 3 정도로 많다.
이라크는 좀 묘하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소수 수니파 출신으로 다수 시아파를 억압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란혁명을 진두지휘한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한때 후세인의 후원 아래 이라크 나자프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나자프는 시아파의 성지로 알리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호메이니가 이라크 내 시아파를 부추기자 후세인은 1978년 그를 프랑스로 추방했다. 이듬해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호메이니가 전권을 장악하자 두 나라는 원수가 됐다. 1980년에 터진 이란·이라크 전쟁은 8년간 지속됐다. 이때만 해도 미국은 후세인 편에 섰다.
그러나 1990년 걸프전, 2003년 이라크전쟁이 터지면서 미국과 이라크는 적이 됐다. 후세인은 생포됐다. 그가 처형당한 뒤 이라크에선 시아파가 득세했다. 현 아딜 압둘마흐디 총리도 친이란 시아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