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인식(facial recognition) 기술이란 개인의 저장된 또는 실시간 장면에 잡히는 모습이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이미지 자료와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진 또는 동영상 카메라를 이용하는 생체정보 기술이다.
현재 세계는 급속히 확산하는 얼굴인식 기술 논란으로 뜨겁다. 그것은 누구도 동의한 적 없지만 이미 사람들의 얼굴은 곳곳에서 정부와 기업에 의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되고 있으며 다양한 목적에 사용되고 있는데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경찰국가로 돌진하고 있다”(가디언)는 우려가 커지지만 아직 관련 법 규정은 미비한 실정이다.
미국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2019년 9월 얼굴인식 등 인공지능(AI)기술이 불투명하게 확산하고 있다는 우려와 관련, 알권리의 필요성을 지적하면서 ‘AI감시의 글로벌 확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얼굴인식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국가는 전세계 176개국 중 64개국에 이른다. 3개국 중 한 나라는 이미 얼굴인식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주로 권위주의 정부가 얼굴인식 기술을 사용하고 있을 것으로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정치체제나 지역을 가리지 않고 확산해 있다. 감시라는 인권침해적 통치술과 첨단기술이라는 양면성 때문이다.
보고서는 “얼굴인식 기술과 같은 AI감시 기술은 전문가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교통혼잡을 감시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지만, 더 많은 주민을 감시, 추적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며 다양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는 합법적이고 일부는 인권을 침해하며 상당 부분은 흐릿하고 탁한 중간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얼굴인식 기술 적용의 상당 부분이 합법과 불법 사이에 모호한 상태로 남겨져 있다는 얘기다.
-중국 업체들이 주도
중국은 전 세계적으로 얼굴인식 기술 개발의 주요 동력이자 공급책으로 꼽혔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는 AI감시 기술을 세계 각국에 가장 압도적으로 많이 공급하는 회사로 조사됐다. 상위 5개 업체 중 3곳은 중국 기업 화웨이, 하이크비전, ZTE로 나타났다. 중국 기업의 한참 뒤에 일본, 미국 기업이 뒤따른다.
AI 감시기술 중에서도 얼굴인식 기술이 사용되고 있는 64개국 중 중국 기업의 기술을 주로 사용하는 국가는 53개국으로 조사됐다. 한국은 얼굴인식기술이 사용되고 있으나 중국 기업 기술을 주되게 사용하지는 않는 나머지 11개 국가에 포함됐다.
중국은 특히 독재 체제의 저개발국가에 연화 차관(달러로 빌려주고 현지통화로 상환받는 유리한 차관)을 대주면서 기술을 적극 침투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중국 기업들이 자국 장비를 사용하도록 장려하면서 차관을 주는 전술은 특히 케냐, 라오스, 몽골, 우간다,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국가들과 관계된다”면서 이런 방식이 아니면 첨단기술에 접근하기 어려운 국가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의 전술은 고도로 정치적 억압에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을 구매하는 데 보조금을 주는 것으로, 그 규모에 대한 걱정도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법제도와 사회적 공감 미비
기술은 이미 급속히 일상에 침투하고 있지만 관련 법제도나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여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인도는 지난달 전국에 얼굴인식 보안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미 공항에 얼굴인식 카메라를 설치하는 시도에 깜짝 놀란 사생활 보호 옹호자들은 정부가 이제 거대한 집단감시 도구를 찾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인도 인권단체 관계자는 이 신문에 “명확한 토론이 없었다. 정부가 실제로 원하는 게 뭔지, 하려는 게 뭔지 알기도 어렵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뭔지,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에 말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기술의 부정확성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 의원들이 자신들의 사진을 경찰의 얼굴인식 프로그램에 넣어보니 26명이 범죄자로 지목됐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하면서 오류 가능성을 지적했다. 호주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제기됐다. 호주 정부는 지난달 대규모 얼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에서 운전면허증 사진이나 여권 사진을 한번이라도 촬영했다면 이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된다. 호주 인권위원회 관계자는 가디언에 “법 집행기관이 부정확한 정보를 사용할 경우 자의적으로 구금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경찰이 비밀리에 드론을 통해 공중에서 얼굴인식 카메라를 가동했으며 지난해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을 때 참가자를 체포하는 데에 활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던 미국 볼티모어에서는 규제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볼티모어의 경찰 시민위원회 소속 위원은 가디언에 “이 기술은 수염이 있는 흑인은 다 똑같다고 인식한다. 모자가 달린 상의를 입은 흑인도 다 똑같이 인식한다. 얼굴인식 소프트웨어는 유색인종이나 여성에서 훨씬 오인확률이 높게 나타나는 ‘테크노레이시즘’(기술 인종주의)”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자유시민연맹은 “볼티모어의 모든 사람에게 전자발찌를 채운 것과 마찬가지”라고 규탄하기도 했다. 미국 민주당의 라시다 틀라입 하원의원은 볼티모어 사건이 벌어진 뒤,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유색인종 커뮤니티에서 한번도 시험되지 않은 실험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저소득층을 위한 공영주택에서 얼굴인식 기술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소개한 틀라입 의원은 “생체정보로 모든 사람을 감별하고 확인하겠다는 것은 개개인이 아무 기록을 갖고 있지 않아야만 결백한 것이고, 그렇지 않은 한 유죄라고 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이 기술은 우리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두렵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 매사추세츠의 케임브리지 등에서는 얼굴인식기술 사용을 아예 금지하기도 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보고서는 “각국 정부는 제기되는 의문에 답하고 새로운 감시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투명성을 더 완전하게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촉구했다.